녕하세요.
전 국가대표 농구선수이자 현 웨이크업바디 운동센터 대표 하은주입니다.

감사하게도 너무나 많은 분들께서 제 은퇴 후 근황에 대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하신다는 것을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2016년 스포츠 심리 전공 체육학 박사 학위 취득 후, 2017년 미국에서 스포츠심리 박사후 과정을 다녀왔습니다. 귀국 후, 2018년 2월부터 웨이크업바디 운동센터와 스포츠심리상담센터에서 제 꿈을 펼쳐나가고 있습니다. 

하은주가 재활운동센터를 한다…?! 제 히스토리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계시는 분들은  ‘뭔가 잘 어울린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제가 겪었던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이야기 들어보시겠어요?

농구… 24년 동안 해 온 농구는 제게 너무나도 소중하고 무척이나 사랑했던 존재였습니다.
한편으론 야속하고 밉고 쳐다보는 것 조차 싫었던 적도 있었던… 그런 존재이기도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전 24년의 선수 생활 중 약 23년 간 무릎 재활을 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처음 농구를 시작했던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처음 1년을 빼고 초등학교 5학년 부터 은퇴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끊임없이 무릎 통증에 시달렸어요.

이를 극복하기 위해 24년 동안 총 5번의 무릎 수술을 했고,  선수 생활 유지를 위해 끊임없는 재활을 해야만 했죠…
전 지금도 병원을 잘 가지 않아요. 선수 시절 어느 병원을 가도 너무 절망적이고 농구를 그만두는게 어떠냐는 이야기들만 하셨거든요…

 

제가 처음 운동을 시작했을 당시에는 국내 엘리트 스포츠에 팽배해 있던 성적지상주의와 학교와 지도자들의 무한 이기주의에서 비롯되는 어린 선수들의 희생이 참 무수히도 많았어요…
당시의 학생 선수들에게는 학생으로서의 신분은 존재하지 않았고, 오로지 선수로써의 삶 만을 강요 당했습니다. 학생이라면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수학여행, 운동회, 소풍 등 반 친구들과의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기회는 전혀 허락되지 않았으니까요.

더 최악이었던 건, 학교 성적을 위해서 라는 명목 하에 어린 선수들에게 거의 매일 같이 행해졌던 지도자들의 구타와 폭언들이었던 것 같아요. 어린 선수들이 겪었을 공포와 두려움들을 이용해 성적만을 챙기려 한 이기적인 지도자들. 당시의 좋았던 기억을 아무리 기억해 내려해도 지옥같았던 고통스러웠던 기억 밖에는 남아 있지가 않네요.

다행히도 이런 엘리트 시스템의 폐해들이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고 해요.  많은 분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고 있다니 감사하고 안심이 됩니다…

 

파르르 떨리던 가녀린 어머니의 손…
‘괜찮아, 엄마가 낫게 해줄게’

다시 제 얘기로 돌아가자면, 전 결국 운동을 시작한지 갓 1년이 지난 12살의 어린 나이에 무릎 연골이 손상되었다는 진단을 받게 되었고, 연골의 손상 상태는 이미 회복불능의 치명적인 상태이며, 선수생활은 커녕 일상 생활에서도 평생 후유증이 남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의사선생님이 어찌나 차갑고 냉정하게 말씀하시던지… 어린 애가 이렇게 될 때까지 왜 방치한거냐고, 엄청나게 아팠을텐데 주위에 아무 말 안 했냐고 물으시는데…

전 그 때의 저희 어머니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어요. 진료실에서 나와서 그렁그렁 눈가가 촉촉해 지셔서 애써 태연한 척 살짝 미소를 머금고
“괜찮아, 걱정마. 엄마가 꼭 낫게 해줄게” 라고 하시며 제 손을 잡으시고 점심 먹으러 가자고 하셨죠…
제게 내미셨던 어머니의 손이 어찌 그리 파르르 떨리시던지…

‘아 상황이 꽤 심각한가보다 내가 많이 아픈가보다 나는 이제 운동을 못하나보다…’ 그냥 직감적으로 알았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사실상 운동선수로써 사형선고나 다름 없는 거잖아요… 어머니는 아마 억장이 무너지셨을 거에요.

 

아프다고 쉬는 건 선수로서 자격 없는거야!
정신력으로 이겨내라!!

무.식하고 무.책임했던 나의 지도자님들…

당시 저는 “아픈건 참는거다, 정신력이 강해지면 다 견뎌낼 수 있다”라는 지도자의 말만 믿었어요. “집에 가서 부모님께 일일이 시시콜콜 다 얘기 하는 건 나쁜거야”

무릎 통증을 참고 또 참으며 혹독한 훈련량을 견뎌냈죠… 그리고 그렇게 제 무릎은 망가져 버렸어요… 수술 직전까지 중요한 대회라며 참고 하라고 무릎에 테이핑을 칭칭 감고 결승까지 다 뛰게 한 사람들이 막상 제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고 난 뒤로 연락 한 번이 없더라고요…

결국 무릎 수술을 받게 되고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동안 학교 농구부 관계자들은 단 한명도 오지 않았어요… 제 동기들, 선후배들 등의 팀 동료들 조차 단 한명도… 오지 않더라고요… 슬펐죠…
존재 자체를 부정당한 느낌이었어요..병실에서 엉엉 울었던 게 지금도 기억이 나요… 지금 생각하면, 저보다도 그런 저를 바라보는 부모님 가슴이 더 찢어지셨을 것 같아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제 친구들은 중요한 대회가 얼마 안 남았다고 하루도 쉬어주지 않고 운동을 시켜서 병문안을 올 수가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너무나 이른 깨달음… 새로운 꿈의 시작…

그렇게 제 첫번째 선수로서의 인생은 그들에 의해 끝이 났어요. 제가 끝낸게 아니에요. 그들이 제가 이미 끝났다고 판단하고 절 너무나도 쉽게 버렸죠.

이 때부터 다짐했던 것 같아요… 앞으로 어른들, 특히 농구 지도자들, 농구 관계자들의 말은 절대 믿지 않을거라고… 그들이 어떤 말을 해도 그건 다 그들의 이기적인 이익을 위해 나를 이용하려고 하는거라고… 모든 결과들은 오롯이 나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뼈에 사무치게 알게 되었거든요…

이런 슬픈 현실을 초등학교 6학년 때 이미 깨달아버렸으니 참 슬프네요.

 

이후 전 일본 고등학교로 유학을 가기로 결정했어요. 상처만 남은 이 곳을 떠나서 새롭게 시작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던거 같아요.
부모님께 참 감사해요. 제게 다시 길을 열어주신 거니까요…

그 곳에서 저는 선수로써 재기를 이룰 수 있도록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정말 많은 분들의 보살핌 속에서 고통스러운 재활 과정을 견딜 수 있었고, 그렇게 전 선수로서 다시 재기에 성공하게 되었어요…

음… 그렇다고 통증이 사라진건 아니고.. 이 통증을 안고 농구를 계속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갔던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일본 실업팀을 거쳐 국내 복귀 후에는 신한은행이라는 명문 구단에 입단을 했고, 이후 2시즌을 치뤘습니다. 당시 제 나이는 25살이었는데… 제 무릎은 점점 최악의 상태로 곤두박칠치고 있었고, 제대로 무릎을 구부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어요. 제대로 걷질 못하는 지칠대로 지친 상태로 전 진지하게 은퇴를 고민 했었죠.. 이 때 구단에서 저를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해주실 수 있는 실력있는 트레이너 선생님을 모셔와주셨습니다.

최고의 트레이너를 만나다.

당장이라도 은퇴하라고 할 정도로 좋지 않은 무릎상태의 제가 신한은행 이라는 팀에서 주축선수로서 약 11년의 선수 생활을 이어오면서 총 6회의 통합우승과 3회의 챔프전 MVP까지 수많은 영광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제 인생에서 최고의 트레이너, “박은경 트레이너” 를 만났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박은경 트레이너는 약 10년 가까이 신한은행 수석 트레이너로 선수들을 관리하셨고, 국가대표 여자 농구팀 트레이너로써 우리 나라 여자 농구의 발전에도 큰 도움을 주신 베테랑 선생님이시랍니다. 제 선수 생명을 약 9년 연장해주신 분입니다.

현재는 웨이크업바디 운동센터 센터장님이시자 저와 함께 공동 대표님이세요. 물리치료사 이자 선수트레너로써 스포츠 물리치료 및 선수 트레이닝의 진짜 전문가라는 수식어를 붙여드리고 싶은 분이죠.

실은 제가 선수 생활을 하는 내내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저는 박은경 트레이너에게 러브콜을 했답니다. “나는 은퇴 하고 나면 선생님이랑 재활운동센터를 오픈할 거에요, 함께 해요~” 라고요~ 한결 같이 싫다고 하셨지만 결국 현재 함께 하고 있으니, 제 노력이 결실을 맺은 셈이죠.

이런 트레이너를 저만 누리고 싶지 않았어요. 충분히 고칠 수 있는 부상 임에도 제대로 된 치료나 재활을 하지 못해 중도 포기하는 선수들을 보면서 너무나 안타까웠죠…

제 2의 꿈을 펼치다…

일본에서 제대로 된 재활을 경험하면서 어떤 심각한 부상이라도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완치라기 보다는 내 몸을 정확히 알고 잘 관리 하기 위한 최적의 프로그램을 수행함으로써 얼마든지 개선이 가능하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희망이 보였고 행복했거든요.

이 때부터 저는 지금도 한국에서 부상으로 신음하고 있는 수 많은 선수들이 이런 제대로 된 재활과 치료 등의 관리를 받으면서 선수생활을 할 수 있는 스포츠 재활 센터를 꼭 만들어야 겠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꿈은 선수생활을 하는 내내 단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습니다.

3년동안 아팠던 저였기에, 이미 망가진 무릎 연골을 되돌릴 방법이 없어 그들을 원망하며 자포자기 했던 저였기에, 그런 상황에서 희망을 봤고 방법을 찾았고 어떻게 하면 좋아질 수 있다는 걸 너무 잘 알기에, 누구보다 상처 받았고, 파란만장한 삶을 겪어온 저였기에, 반드시 재활운동센터를 오픈해야만 했습니다.

저와 같은 아픔과 상처를 겪는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도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찾아주시는 모든 이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되어 줄 수 있는 센터를 만들고 싶다”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오시는 모든 분들께 끊어지지 않는 단단한 동아줄이 되어 드리고 싶다!!”

수원 웨이크업바디 운동센터의 초심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했답니다.

솔직히 우리 주변에는 엉터리 트레이너, 엉터리 재활센터, 엉터리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건 운동 선수들 에게만 속하는건 아니고, 일반 분들, 어린 학생들부터 2-30대 젊은 청년층, 4-50대 중년층, 6-70대 고령층까지 수 많은 분들이 충분히 고칠 수 있는 몸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방법을 몰라서 개선시키지 못 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세요…

제가 선수 생활 하는 동안 저희 아버지가 거의 3-4년을 척추 협착증으로 고생하시다가 결국 허리 수술을 하게 되셨는데 제대로 된 재활 운동이 가능한 곳이 없더라고요… 답답했죠…아 진짜 은퇴 후 내가 제대로 된 진짜 재활운동센터를 시작 해야겠다는 확신이 생겼죠…

​웨이크업바디는 정말 다양한 분들이 다니고 계세요. 어린 엘리트 운동선수부터 국가대표나 프로 선수들은 물론, 허리나 무릎 등 수술 후 일상생활로의 복귀를 위해 저희 센터를 다니시는 분들, 원인모를 통증들로 인해 고통받으시다가 센터를 찾으신 분들, 체형의 문제를 바로잡고자 오시는 분들… 등등.
모든 회원님께 만족을 드리기 위해 다수의 실력있는 전문가들을 상주하고 계시답니다!

​하은주의 제 2의 꿈이 펼쳐지고 있는 이 곳, 수원 웨이크업바디 재활운동센터 에서 더 많은 분들의 희망이 되어 드리기 위해 웨이크업바디의 초심을 잃지 않고 차근차근 열심히 달려나가보겠습니다.

 

저의 세컨드 커리어를 힘껏 응원해주세요. 선수생황을 하는 동안 많은 아픔도 겪었지만 반대로 과분한 사랑도 받았습니다. 제가 받은 과분한 사랑을 다시 여러분들께 돌려드릴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고 정진하는, 하은주와 웨이크업바디 운동센터가 되겠습니다. 길고 긴 글을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웨이크업바디 운동센터를 향한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웨이크업바디 운동센터 대표 하은주 올림